hong × kim
House Full of Happiness

Fictional interview with three main characters in Korean soap opera ‹White Power›. It is written using each charater's set-up and synopsis. This article is included in Design. Culture. Research, Published by Korea design foundation, 2010, Seoul.
행복이 가득한 집





젊은 감각파, 장준혁 · 민수정 부부의 아파트 라이프 엿보기

송파구 신천동에 위치한 주상복합아파트, 석촌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6년차 부부인 장준혁 씨와 민수정 씨는 얼마 전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몄다. 실력있는 외과의사로 올해 초 명인대학병원의 외과과장으로 취임한 장준혁 씨와 의사부인회의 총무직을 맡고 있는 민수정 씨는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처음 가져보는 둘만의 집을 꾸밀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여기로 이사오기 전, 두 부부는 수정 씨의 친정인 압구정동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처가살이하는 것이 불편했을텐데도 분가가 결정되자 오히려 수정 씨보다 준혁 씨가 서운해했다고 한다. 경험 많은 선배 의사로서 늘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주셨던 장인어른과 떨어져 지내게 되는 것이 못내 섭섭했다고. 그러자 수정 씨는 사실 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다는 생각에 사실 좋지 않았냐며 준혁 씨에게 농담을 건넸다.
부부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물색하던 중 석촌호수를 끼고 있는 이곳의 서정적인 풍경에 한눈에 반하여 주저 없이 계약을 했다고 한다. 준혁 씨의 직장과도 가깝고 편의시설이 건물 내에 모여있어 실용적이라는 점도 부부의 마음에 들었다. 단 하나 수정 씨의 마음에 걸렸던 것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일률적이고 답답한 아파트 내부 구조. 그래서 부부는 입주하기 전 인테리어 업체와 상담하여 리노베이션을 결정했다.


"준혁 씨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오게 됐죠. 그런데 제가 마당이 있는 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처음 현관에 들어섰을 때 주상복합의 네모지고 반듯한 구조에 가슴이 턱 막혔어요. 그래서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드라마틱하게 트인 느낌을 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죠. 아버지께서 집을 구하고 인테리어 하는 과정에 도움을 많이 주시긴 했지만 처음으로 둘만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무척 설레었어요. 호호."
집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현관의 긴 복도다. 이 복도와 거실이 만나는 지점은 준혁 씨와 수정 씨 부부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보통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거실로 통하는 입구를 벽으로 막아두는데, 장준혁 씨 부부는 그 벽이 전체적인 집의 인상을 답답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현관과 거실을 막고 있던 벽을 제거하고 복도의 단을 높여 거실보다 조금 높이 배치해 계단을 내려오게 하니 집의 인상이 확 달라졌다. 기존 공간보다 훨씬 시원하고 넓어보이는데, 거기에 더해서 시야 확보가 가능하도록 전체적으로 낮은 가구를 배치했다고 한다. 새하얀 도자기와 간접조명이 어우러지는 현관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와 거실로 향하는 길은 의도한대로 과연 드라마틱하다.
"들어오는 길을 가로막는 벽을 없에고, 거실 옆의 다용도실과 베란다를 모두 뜯어내는 등 구조를 모두 고치는 대공사를 감행했어요. 그 덕분에 거실이 한층 넓어졌고 주방쪽으로 들어가있던 식당을 거실의 연장선상에 배치할 수 있었어요. 대신 주방과 거실공간을 벽을 새로 만들어 분리, 정리하고 주방 안쪽에 다용도실을 따로 만들었어요. 주방, 식당, 거실을 한 공간에 배치하는 사례가 많던데 저는 주방은 분리 되는게 좋더라고요. 어중간하게 섞여 있는게 싫거든요. 이렇게 배치하니까 딱 떨어져 보이잖아요? 아내도 제가 좋아해서 그런지, 좋다고 하네요."


1. 왼쪽은 아파트의 기존 평면도, 오른쪽은 리노베이션한 장준혁 씨 부부 아파트의 평면도. 너무 넓었던 침실과 안쪽 공간을 나누어 게스트룸을 만들고 현관에서 거실로 통하는 복도를 막고있던 벽을 텃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펼쳐지는 넓은 거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고 미니멀한 소파다. 철제 프레임의 나지막한 흰 테이블, 그리고 기하학적인 무늬의 패브릭이 돋보이는 장식장이 세련돼 보인다. 장식장 위에는 검은 윤기가 도는 도자기에 하얀 자작나무 가지를 꽂아넣어 포인트를 주었다. 거실을 가로질러 식당쪽으로 걷다 보면 티테이블 아래로 블랙과 그레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각형의 러그를 발견할 수 있다.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기도 하는 미니멀리즘과 모더니즘이 장과장 부부가 선택한 인테리어 컨셉이다. 마침 미니멀리즘은 인테리어 디자인 신에서 2007년 한해 가장 큰 주류를 이룰 것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10년 전 쯤에도 미니멀리즘이 유행했었다고 해요. 젠 스타일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저나 아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예전의 그 미니멀리즘이 가지는 차가운 모습과는 또 달라요. 저희는 모던한 그레이나 블랙를 주로 사용하되 포인트로 화이트 혹은 옅은 베이지 컬러를 많이 사용합니다. 사실 화이트라고 다 같은 화이트가 아니거든요. 아주 새하얀 색이 식탁 위의 그릇에 있다면, 조금 덜 하얀 우윳빛깔의 조명이 있을 수 있는거죠. 단순하고도 절제된 미니멀리즘과 다양한 화이트컬러가 결합하는 것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2. 식당 쪽에서 바라본 거실 풍경. 군더더기 없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청산유수로 이어지는 준혁 씨의 인테리어 컨셉 소개에 기자와 동행한 스타일리스트들 조차 입을 벌릴 정도다. 수정 씨가 까르르 웃으며 "우리 남편은 외과 전문의로도 유명하지만 문화예술 방면으로도 정말 박식해요." 라며 칭찬한다. 이미 갤러리들 사이에서 장준혁 씨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바보산수> 등 유명 작품의 콜렉터라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고. 거실로 들어서는 입구나 식당 벽 전면을 채우고 있는 그림 덕분에 마치 갤러리나 카페에 온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 분위기를 살리는데 한 몫 하는 것은 마치 조각품들처럼 자리잡은 조명들. 사람 키만한 대형사이즈의 플로어 램프가 공간의 스케일감을 한껏 연출해준다.

3. 이탈리아 모던 디자인의 대명사 '폴리폼(Poliform)'은 심플한 디자인과 편안함이 조화를 이루는 스테디셀러. 준혁 씨 거실의 소파와 티테이블은 세련된 블랙이 기품을 더하는 폴리폼의 '샨가이(SHANGA I)'라인. 디테일 없는 심플한 디자인의 블랙 소파는 1천4백만 원. 울 섬유의 보송보송한 감촉이 살아있는 카페트는 한일카페트, 4십만 원대. 소파 뒤의 플로어 램프와 플라워 프린트 쿠션은 지난 일본 여행 때 수정 씨가 반해 구입했다고. 일본 라이프스타일 잡화 브랜드 '프랑프랑(Francfranc)'. 프랑프랑은 완전히 미니멀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준혁 씨와는 조금 다른 수정 씨의 취향이다. 곧 국내에 정식 수입될 예정이라고 하니 주목해보자. 유러피안 스타일의 심플 플라워 프린트 쿠션과 검은 배경의 플라워 프린트 램프는 미니멀한 가구들과도 아주 잘 어우러져 모던하면서도 감각적인 인상을 준다. 블랙 면 커버에 흰 벨벳을 덧댄 쿠션은 압구정동 로드샵에서 구입했다. 왼쪽의 흰 플로어 램프는 수정씨 아버지의 선물.

수술할 때는 언제나 비발디의 곡을 듣는다는 장준혁 씨에게 거실에 있는 오디오는 가장 중요한 물건 중 하나. CD플레이어와 앰프가 올려진 장식장의 수납칸에는 카르미뇰라(Giuliano Carmignola)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부터 다양한 오페라의 실황들까지 각종 CD와 DVD가 빼곡하다. 위대한 작곡가이기도 했지만 비르투오조라고 불릴 정도로 연주에 있어 탁월한 기교를 가지고 있었던 비발디의 음악이 천재 외과의라고 불리는 장준혁의 손 끝에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아닐까? 출시된 음반을 연주자, 지휘자 별로 다양하게 섭렵하고 있어 별도의 목록이 필요할 정도로 클래식에 대한 준혁씨의 열정은 대단하다. 천재라고 불리우는 그들에게 동류의식을 느껴서 일지도 모른다.
"실은 얼마 전 퇴임하신 저희 외과과장님이 오디오에 취미가 있으셨죠. 그분을 제가 십 년간 모시다보니, 취미도 닮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소파에 앉으면 세심하게 구성된 스피커로 아주 생생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일부러 거실에는 소파와 티테이블, TV, 스피커를 제외하고 다른 것은 거의 놓지 않았어요. 음악과 DVD 감상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죠. 음악 감상을 위한 완벽한 공간이라고 자부합니다."
MAS라는 호주의 오디오 메이커는 수가공식 제조과정의 하이엔드 시스템만을 소개하는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회사의 설립자인 코스타스 메타사스 역시 의사였는데, 완벽한 소리를 듣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자기만의 오디오를 만들기 시작하여 결국 오디오 회사까지 설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클래식에 대한 열정으로 완벽한 공간을 꾸민 준혁 씨와 소리에 대한 열정으로 자기만의 오디오를 만들어낸 코스타스 메테사스. 둘의 모습이 하나로 겹쳐보이는 순간이다.



4. 오라클 오디오(Oracle Audio)는 세계가 인정한 CD 재생기의 최고급 제품이다. 1천만 원.
5. 준혁 씨가 아끼는 앨범 중 하나인 칼 뵘(Karl Bohm)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의 모차르트 심포니.칼뵘의자로잰듯정교한연주 스타일이 모차르트의 자유분방함을 엄격한 틀 속에서 철저하게 해석해 심플하고 고고하게 살려준다고 한다.
6. 온통 클래식으로만 가득찬 거실에서 거의유일하게발견할수있었던가요 앨범인송창식83.이앨범이나왔을때 준혁 씨는 이제 막 명인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한 대학생이었다. 고향인 속초에서 막상경해홀로힘들었던와중에이 앨범의 노래를 들으며 힘을 내곤 했다고. 특히 이 앨범의 ‹푸르른날›은준혁 씨의 노래방 애창곡이기도 하다.


거실과 식당이 미니멀한 스타일에 바탕을 두고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너른 공간으로 만들어졌다면 부부 침실은 아늑함과 실용성에 집중하여 만들어낸 공간이다. 베이지 빛깔의 은은한 플라워 프린트 벽지에서 편안한 휴식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고, 한켠에 놓인 티테이블과 의자 세트에서는 오붓한 시간을 즐기는 두 사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역시 침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침대. 검은 프레임 위에 놓여있는 하얀 매트와 침구가 아주 세련된 인상이다. 직업이 의사이기 때문일까? 침구도 숯 섬유를 사용해 세균 번식을 억제하고 탈취기능이 있는 것을 사용했다는 장준혁 씨의 설명에 완벽주의자라고 알려진 그의 꼼꼼함을 짐작해본다.
"침실은 스타일보다는 편안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블랙 앤 화이트의 컨셉을 살려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을 최대한 가져 가는 것에 중점을 뒀죠. TV를 올려놓은 검정 수납장 위의 화이트 조각이 이 침실의 포인트에요."
민수정 씨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드레스룸. 부부 욕실 앞에 복도식으로 설치한 드레스룸은 붙박이 가구를 짜넣은 똑똑한 공간활용이 돋보인다. 수정씨가 어떤 문을 열자 기하학적인 무늬들의 넥타이들이 빼곡하게 걸린 수납장이 드르륵 빠져나왔다.


7. 장식장의 기하학적 패턴 패브릭이 부부의 취향을 짐작하게 한다. 패브릭 장식장과 가죽으로 감싼 화병은 모두 아르마니 까사제품으로 각각 5백만 원대, 4십만 원대.
8. 식기는 언제나 흰색으로 통일하기로 결정했다고. 선과 면만으로 화이트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살린 미니멀한 디자인은 깔끔하고 도회적인 감각을 발산하고 있다. 접시와 커피잔 등은 모두 빌레로이&보흐 에서 구입했다.
9. 이 미니카는 1931년형 부가티 르와이얄 켈르너 쿠페의 모형이다. 남자들이 원하는 최고의 장난감이라는 자동차. 그 중에서도 빈티지 카는 최고의 부호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라고 한다. 모형의 실제 자동차는 100억 원을 호가한다고.


"제가 이 드레스룸을 위해 마음먹고 장만한 수납장이에요. 공간활용성도 뛰어나지만 넥타이만 쪼르륵 걸어놔도 열어볼 때마다 기분을 환기시켜주는 또 다른 인테리어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 장과장님이 아침에 넥타이를 고르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뿌듯하고 절로 행복해져요"
이때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침실 곳곳에 걸려있는 액자들이다. 거실과 식당에 커다란 그림들이 많았지만 침실에는 작은 액자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한 쪽에 걸려있는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만만찮아 준혁 씨가 직접 찍은 것인지를 물어보니 아쉽게도 카메라에는 취미가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얼마 전 방송에 출연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친분이 생긴 PD에게 신년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드레스 룸 끄트머리로 보이는 색소포니스트가 그려진 그림, 인형들... 모두 본인이 수술했던 환자들의 선물이란다. 다만 한켠에 걸려있는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모여있는 수집 액자가 특이해 그 사연을 궁금해하자 준혁 씨가 웃으며 답한다.


10 장준혁씨부부의침실풍경.다양한 소품들이 멋스럽다.
11 아르마니까사의특징인기하학적 텍스타일 디자인이 적용된 쿠션이 곡선이 아름다운 의자와 잘 어울린다. 의자와 테이블은 프랑스의 리빙 브랜드 '로셰보부아(Roche Bobois)' 제품.
12 검은프레임이특징인 이탈리아 모던 디자인 가구 브랜드 자노타(Zanotta)의 '카보(Caveau)'침대. 프레임 마무리는 가죽, 패브릭, 목재 중 목재로 선택했다. 이 침대 위에서라면 격조있는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2천 3백만 원.


"침실에 있는 장식품이나 그림들은 대부분 선물 받은 것이지만 이 액자는 제가 만든거에요. 어렸을 적 집이 시골이었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저를 키우셨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밖에서 곤충들과 많이 놀았죠. 특별히 나비를 수집하는 건 방학숙제를 하던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아요. 예쁘지 않나요?"
자신도 외과과장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오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는 장준혁 씨는 천재 외과의에 인간미까지 갖춘 너무 완벽한 사람으로만 보였다.
장준혁, 민수정 씨 부부의 아파트는 모던하고 신선한 공간 구성의 표본을 보여준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레노베이션하여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까지도 눈앞에 그려볼 수 있도록 해주는 감각이 살아 있는 집이다. 이제 두 부부의 활기찬 나날들이 이 새롭고 개성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질 것이다.



13 넥타이를 고쳐매는 장준혁씨. 넥타이진열장 등 붙박이식 드레스룸의 가구들은삼나무원목맞춤가구다. 삼나무 원목은 천연 항균물질인 피톤치드를 발산한다고 알려져 있어 최근 각광받고 있다.
14 장준혁씨가 나비를 수집한 액자
15 화이트 도자 조각은 똑같이 생긴 것 같지만 오묘하게 모양이 다른 두가지가 함께 놓여 있다. 왼편의 화이트 플로어 램프는 거실의 것과 같은 재질로, 한 쌍으로 수정 씨의 아버님께서 선물하셨다.




이주완, 김아영 부부의 고풍스러운 앤티크 하우스

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한남동 언덕의 완만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담쟁이덩굴이 한창인 집 한 채가 서있다. 벨을 누르자 밝은 목소리의 여주인, 김아영 씨가 어서 오라며 문을 열어준다. 왼편 언덕 위에 펼쳐진 푸른 정원에 먼저 눈길을 빼앗기다 운치있는 돌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 석재 블록이 깔린 마당과 한폭의 그림같은 고즈넉한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이때 영국 신사를 연상시키는 이주완 씨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라는 명인대학병원의 외과과장으로 취임한지 십 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권위의식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 사람. 내년 과장직 퇴임을 앞두고 계신다고 해 아쉽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이제는 저보다 뛰어난 제자에게 자리를 물려줘야죠. 저는 또 은퇴 후의 제 인생을 살고... 저희 아버지도 명인대학교병원 부원장을 지내셨어요. 그분이 은퇴하시고 지금은 또 다른 분이 그 자리에 있으십니다. 제가 은퇴하면 제 뒤를 이어갈 후배가 있고... 인생이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라며 점잖은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아내인 김아영 씨는 남편이 의료 현장에서 실력있는 외과의로 활약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며 이주완 씨의 은퇴가 섭섭한 눈치다.


올해로 결혼 35주년이라는 이들 부부가 이 곳 한남동 자택에서 함께 살아온 시간도 꼭 그만큼이다. 본래 이 집은 1930년대에 일본인 대지주가 지은 '적산가옥'이었다고. 집을 물려받은 이주완 씨의 아버님은 헐고 새로 지으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산 증인같은 이 집을 없에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생각이 깊으신 분이셨다. 집도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고 사람과 함께 변한다는 걸 염두에 두셨던 것일까. 아버님은 아들이 결혼한 이듬해 한옥의 내부 설비를 모두 현대식으로 바꾸는 리모델링에 착수했다. 집의 골조만 남기고 모든 벽을 다 뜯어낸 뒤 이중창과 단열재를 설치했고, 옛날 집답게 작고 오밀조밀했던 방들의 벽을 터서 가족들이 각각 넉넉한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집의 기본 구조를 바꾼 대규모 공사를 시작으로 하여 다다미를 걷어낸 방에 가스 보일러와 온돌을 설치하고, 낡아서 삐걱거리는 문과 마루를 바꾸어 나갔다. 몇 년 전에는 모든 방에 인터넷과 에어콘, 케이블 TV 설비까지 완료했다는 이주완 씨의 집은 실로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다고 해야 할 듯하다. 70년의 역사가 담긴 고풍스러운 집에 이제 현대식 편리함까지 살아 숨쉰다.



1. 복도는 집을 수리하기 전엔 더 좁았고, 그래서 더 길어보였다고 한다. 열려있는 문 사이로 슬쩍 보이는 부엌에는 얼마 전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앙드레김이 디자인한 냉장고가 보인다.



2. 평면도 상에서 일본식 주택의 특징인 긴 복도를 확인할 수 있다. 서양식 응접실, 한국식 온돌 등 동서양의 문화가 한 공간에 절충된 이주완 씨의 집은 넓은 정원 속에 있어 더욱 운치있다.

"오래된 집이라고 많이들 걱정하시지요. 그러나 뭐든 공을 들이는 만큼 보답이 오더이다. 내부 공사를 할 때 단열재라던가 보일러 같은 것은 현대식으로 바꾸었지만 그 외의 문, 격자, 문고리 같은 것들은 모두 우리 장인들이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문과 창호는 강원도산 육송으로 만들고 마루재, 서까래 등 실내용 목재는 3년동안 자연 건조시켜 아마씨 기름을 발라 마감했지요. 그래야 습기를 덜 먹는다나요. 집이 우리네 정서를 담아 변천해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도 사람 사는 집이 뭔지, 좋은 집이 어떤 건지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제가 조금씩 집을 고쳐나갔고요. 워낙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그런지 세월이 흐를수록 집이 낡는 것이 아니라 점점 길이 들어 원숙해지더군요. 흔한 아파트가 아니라 가족의 역사가 배어있는 집에 산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3. 서까래 위로 이주완 씨와 아버지, 할아버지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세 분 모두 의사이셨다는 설명을 들으며 유서깊은 집안임을 엿볼 수 있었다. 별도로 마련한 응접실의 풍경이 언듯 비추는 것을 볼 수 있다. 앤티크하고 묵직한 스타일의 소파는 어딘가 궁전의 홀에서라도 가지고 온 듯한 느낌을 뽐낸다. 프랑스 정통 앤틱 스타일 무아쏘니에(Moissonier)는 가죽, 패브릭 등을 선택할 수 있는 반 주문 제작 형태라 1년을 기다려 받았다. 3천 5백만 원대. 시민 운동가인 딸 이윤진씨가 작년 유럽에 다녀오면서 부모님에게 선물한 앤티크 스타일의 전화기도 보인다.

집 안에 들어서자 기자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왼쪽으로 가면 서양식의 응접실과 서재, 오른쪽으로 가면 일본식 복도를 따라 부엌과 방들이 늘어서 있다. 이처럼 한 지붕 아래 전혀 다른 느낌의 두 공간이 공존하는 느낌이 굉장히 신선하다고 하자 이주완 씨는 어렸을 때는 긴 복도 쪽에 지금보다 방도 훨씬 많아 숨바꼭질 하면서 놀곤 했다며 조금은 쑥스러운 듯 이야기한다.
거실로 몇 걸음 옮기자 큰 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진다. 우리 고유의 정서가 느껴지는 서까래 아래에 놓인 다국적 가구들이 수준 높은 감각으로 신개념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인다. 행서체가 우아한 병풍과 유미한 곡선을 자랑하는 프랑스 앤틱가구, 그리고 묵직한 스틸 질감의 오디오들이 함께 놓여있는 모습이 이국적이면서도 묘하게 어우러진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공간에는 전등 스위치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조각된 장식이 달려 있어 한 군데도 그냥 지나쳐 볼 곳이 없다. 진한 보라빛 벨벳 드레스에 포인트로 우아한 진주 브로치를 달아 멋을 낸 김아영 씨가 그 거실의 소파에 앉아 홍차를 준비하는 모습은 마치 경성을 거닐던 모던 걸을 보는 듯 하다. 사실 거실을 휘감고 있는 앤티크 스타일은 안주인 김아영 씨의 로망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식 앤틱한 클래식가구는 제 꿈이었어요. 뭐랄까... 화려함 속에서 도도한 분위기가 느껴진달까. 역시 앤티크는 여자의 로망 아니겠어요? 고등학생일 때 친척 어른이 있는 미국에 가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만난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앤티크 가구들이 소녀였던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요. 지금도 앤틱한 소품이나 가구를 보면 너무 좋아서 참지 못하고 사버리곤 하죠. 사실 이 거실은 너무 넓어서 얼마 전에 벽을 설치해서 나눈거에요. 안쪽 응접실에는 벽난로가 있는데 그게 가려지는게 정말 아쉽긴 했지만 공간이 적당해지니 소파가 더 멋지게 살아나는 것 같아서 좋아요. 벽난로 앞은 가족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답니다."


4. 본래더넓었던거실을나누어큰 공간은 현재의 거실로, 작은 공간은 가족 응접실로 만들었다. 책을 한 권 읽으면 좋을 것 같은, 넓은 거실과 대비되는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다. 한쪽 벽을 지키는 벽난로는 처음 이 집이 지어지던 1930년대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거울은 오리엔탈무드 제품으로 1백 5십만 원.

이주완 씨댁 거실과 복도에는 다양한 형태와 빛깔의 도자기가 놓여 있다. 평범한 둥근 항아리로부터 신기한 모양의 병이나 양의 머리를 형상화한 테라코타까지. 이 도자기들은 이주완 씨가 30대 때부터 모아온 것이라 한다. 거실에 놓인 앤티크 가구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아내를 보며 말없이 흐뭇한 미소만 짓던 그가 기자가 도자기에 대해 묻자 눈을 반짝인다.
"도자기는 우리 예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죠. 단아한 백자도 있고 자연스러운 흙빛이 돋보이는 옹기그릇도 있고. 청자는 무엇보다 우아하게 우러나는 옥빛이 매력적이지요. 사실 우리네 도자기는 물론이고 일본의 도자기도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한 도자기를 가리키며)이건 할아버님이 물려주신 것인데... 일본의 이가야키 도자기라고 해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또 도자기를 들여다보면 의도하지 않은 작은 무늬며... 깊이있고 미묘한 색감의 변화들이 보입니다. 하루종일 들여다 보아도 질리지 않아요. 의사들이야 누구든 한 번쯤은 겪는 일이긴 하지만, 제가 담당했던 환자가 처음으로 사망했던 때... 참 힘들었어요. 그때 할아버님의 도자기를 바라보면서 힘을 얻었지요. 그때부터 도자기를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던 것 같군요."


5. (왼쪽) 화려한 장미보다는 들국화 한다발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화병은 이도공방 제품. (중앙) 명인대 병원 과장 취임 기념으로 김아영 씨가 친목모임에서 만나 친분이 있던 광주요 도자문화원의 이사장님에게 선물받은 앤틱한 스타일의 접시도 있다. (오른쪽) 일본의 6고요(古窯)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가야키 도자기.
6. 이주완 씨가 들려준 카라얀의 The Very Best Of Adagio앨범.


거실의 한 축을 차지하는 또 다른 포인트는 오디오다. 이주완 씨는 자기만의 오디오 시스템을 마련한 비법 중 하나가 좋은 CD플레이어를 고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가는 레코드의 아날로그적 음색을 가장 좋아하지만, 관리하기 힘든 사항이 여러가지 있다고. 그래서 음악적 질감이 아날로그 플레이어의 음질을 연상시켜면서 동시에 매우 선명하고 자연스런 음색이 여타 어느 제품과 비교해도 월등히 우수한 성능을 보인다는 추천에 지금 사용하는 CD플레이어를 선택했다. 과연 CD플레이어로 최고의 등급에 오를만한 제품이라며 거듭 만족한다고 한다.
이주완 씨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크 시대의 클래식 음악. 이주완 씨는 바흐의 곡을 들으며 수술할 때 손이 가장 잘 나간단다. 바흐의 현악곡을 즐겨 듣는다는 이주완 씨가 추천하는 앨범은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의 무반주 첼로곡. 심연에서부터 뽑아져 나오는 듯한 첼로의 저음이 특유의 긴 호흡과 어우러져 성스럽게 느껴질 정도라고 한다. 좋은 오디오를 접했으니 한번 청음해 보기를 청하자 주완 씨는 흔쾌히 허락하며 CD를 한참 고르더니 한 장을 꺼낸다. "이 곡은 기자분들도 아실거에요. 우리가 흔히 ‹G선상의 아리아›로 알고 있는 곡인데, 바흐의 관현악 조곡 2번의 Air악장을 독주곡 형식으로 연주하여 널리 알려진 곡이지요. 감성적인 곡이라 쉽게 다가가실 수 있을겁니다. 저도 수술하면서 종종 듣곤 하죠."
거실에 온통 울려펴지는 현의 진중한 소리와 더불어 햇볕을 쬐며 홍차를 마시는 이 순간만큼은 기자도 잠시 인터뷰를 잊고 음악의 선율에 몸을 맡겨 본다.

7. CD 재생기는 오라클오디오(Oracle Audio) 제품, 1천만 원.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진공관 앰프는 Cary제품, 6백5십만 원. 그 뒤로는 이주완 씨의 할아버님이 쓴 글씨로 제작한 병풍이 보인다. 최고급 미송을 사용해 국내 국보급 고서화의 복원이나 표구를 담당하는 40년 경력의 표구 전문가에게 부탁한 것이라고 한다. 병풍 관리에는 습도 조절이 특히 중요하다는 집주인의 귀띔.

실례를 무릅쓰고 서재로 들어왔다. 이곳은 김아영 씨의 취향이 많이 가미된 거실과는 조금 다르다. 연구실이면서 혼자만의 휴식처인 오롯이 이주완 씨만의 공간이다. 동양의 선비들은 생각하는 공간을 서재라 하고 책을 두는 공간을 서고라 불렀다고 한다. 이주완 씨의 서재는 확실히 서고라기보다는 서재에 가깝다. 방 한켠을 채우는 오디오, 윗목에 있는 흔들의자와 여백을 채우는 꽃이 그려진 액자에서 주인의 취향이 드러난다. 예전에는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홀로 바둑을 두곤 했던 그는 요즘 서재에 햇볕이 들 때 즈음 책상에 앉아 성경을 필사한다고 한다. 인생의 대선배였던 은사님이 알려주신 새로운 휴식과 자기수양의 방법이다. 몇 번이나 읽었던 성경이지만 베껴 쓰면서 매번 새로운 구절을 발견한다고. 그는 성경의 구절을 읽으며 위안을 얻기도 하고 삶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고 미소 지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서로 다른 취향과 취미를 30년째 서로 조화시키며 자신들만의 스위트 홈을 만들어나가는 이주완, 김아영 씨 부부는 그 세월만으로도 아름답다. 헤어지는 길, 이주완 씨가 또 다시 투명한 안경 뒤로 눈을 빛내며 다가와 기자에게 말을 건넨다.
"참, 올해 9월에 ‹도자음향특별전›이라고, 도자기로 빚은 스피커를 전시하는 전시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오디오 동호회에서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이 어떤 것이 될런지, 정말 기대되네요. 기자님들이 프리뷰를 한번 해주시면 어떨까요?"

8. 이주완 씨의 서재. 빼곡한 책과 더불어 다양한 감사패가 그동안 이주완 씨가 의학계에서 쌓아온 업적을 짐작하게 한다. 반대쪽에는 오디오가 자리잡고 있다. 지칠 때는 오디오 앞에 흔들의자를 놓고 앉아 음악을 듣는다고. 책상 위의 성경책은 10년 이상 본 것이라고 한다. 묵직한 느낌을 주는 검은 가죽 연필꽂이 및 메모꽂이는 아르마니 까사 제품. 클래식한 스탠드들과 지구본이 서재 한켠에서 자칫 재미 없을 수 있는 공간의 분위기를 우아하게 잘 살려주고 있다.



최도영 부부의 행복이 가득한 집

10년차 부부인 최도영, 이지현 씨의 집을 찾아 종로구 부암동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오래되고 낮은 주택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암동에는 이곳이 번잡한 대도심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하는 아늑한 분위기가 흐른다. 대학병원에서 임상병리학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최도영 씨는 어렸을 때부터 쭉 이 동네에서 살았다고 한다. 현대적 시설을 갖춘 아파트 대신 본가 근처의 주택가에 집을 꾸민 것은 평소 조용히 연구를 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향 때문이라고. 그는 느긋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 동네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연구를 하다가 생각이 막힐 때는 주택가 골목을 따라 산책을 하곤 합니다. 좁은 골목 모퉁이에선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고, 도둑고양이가 저를 경계하며 걸음을 걸어요. 재미있어요. 이 동네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할까요."라고 말한다. 앞장 서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최도영 씨를 따라 우리는 양 옆으로 나무들이 나란히 선 자그마한 마당을 거쳐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문을 열면 홈드라마 세트를 연상시키는 풍경이 펼쳐진다. 집과 주인은 닮는다고 했던가. 최도영 씨의 소탈한 웃음처럼 그의 집도 소박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사람 손길이 많이 닿아 반질반질 윤이 나는 계단 난간 너머로 보이는 거실이 따사로운 분위기로 눈길을 끈다. 아늑하게 꾸며내는 솜씨는 아내 이지현씨의 것이라고. "도영 씨는 병원에서 연구하느라 밤을 새버리거나, 집에 있더라도 서재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러니 거실 커튼을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걸로 골라와도 할 수 없죠, 뭐. 옛날부터 환자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아주버님들도 모두 의사인데요, 도영 씨만큼 환자라면 자기 몸 안사리는 사람은 흔치않대요. 얼마 전에는 휴일에 외식하러 나가서 환자한테 온 전화 때문에 병원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제가 삐진 민아를 달래느라 혼났어요. 예전에는 내과에서 진료도 보고 틈틈이 연구까지 했으니 더 바빴는데... 직장을 옮기고서 요새는 연구만 하니까 좀 나은 것 같기도 하네요." 라고 말하며 살짝 입을 내미는 지현 씨에게 커피를 내오던 도영 씨는 민망한 듯 웃으며 "어우 그래도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 한다. 그래도 환자밖에 모른다고 말하는 지현 씨의 얼굴에서 그의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 최도영 부부의 자택 평면도. 너무나 익숙한 구성이라 서울 강북 지역에 오랫동안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 집이랑 비슷한데' 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소박하고 검소하게 꾸며진 도영 씨의 집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적재적소에 배치된 화분들이다. 옛부터 풍수에서는 '어려운 일은 꽃으로 감춰라' '흉한 작용은 식물로 없애라'고 한다. 그만큼 꽃이나 식물은 집 안의 약해진 기운을 보충해주고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현씨는 요즘 도영씨가 좀 우울해 보이는 것 같아 집안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일부러 색깔이 화사한 꽃만 골라서 놓았다고 귀띔했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신발장 거울 위에 걸린 도영 씨의 딸 민아의 그림, '행복한 우리집'이 먼저 손님을 반긴다. 거실 수납장 위는 가족사진을 컬렉션하는 공간인데, 함께 찍은 사진이 늘 눈에 띄는 곳에 있으니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어 참 좋단다. 집안 곳곳에는 어린 딸의 눈높이에 맞게 꾸며진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긴팔의 북술북술한 원숭이 인형, 키티 캐릭터가 그려진 어린이 키재기, 귀여운 곰인형, 형형색색 다양한 크기의 액자에 들어 있는 딸아이의 모습들... 지현 씨는 요즘 딸 민아와 함께 코즈니(kosney)나 호사컴퍼니(Hosa Company) 등 라이프스타일 숍에 가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함께 가면 딸이 이것 저것 귀여운 인형이나 쿠션을 사달라고 조르곤 하는데, 뭐가 좋을까 함께 고민하고 골라 가져와서 장식하는 일이 요즘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란다.



2.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실 풍경. 커다란 유리창을 감싸는 꽃무늬 커튼이 집안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쿠션이나 가구 등이 대체로 오렌지색, 갈색, 붉은색 계열로 맞춰져 있어 더욱 아늑해 보인다. 정면으로 보이는 등나무 스툴은 공예가 취미였던 지현 씨의 어머니께서 결혼 기념 선물로 직접 만들어 주신 것. 왼편 장식장에 있는 소품들은 대부분 삼청동이나 홍대의 로드샵에서 구입했다. 다만 나무를 깎아 만든 새는 목공예 솜씨가 수준급인 지현 씨가 공방에서 수업을 들으며 직접 만든 것.

지현 씨의 생활 감각은 모두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 여름에는 갑사, 겨울에는 양단으로 쿠션 커버를 만들고 자식들 옷 하나도 손수 지어 입히셨다. 첫 손녀를 보신 날, 수십 년간 고이고이 간직해놓은 당신이 입던 배냇저고리며 천 기저귀에 아이의 이니셜을 손수 새겨 멋스러운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오셨다고 회상한다. 꽃꽂이나 바느질을 따로 배웠느냐고 하면 그녀는 스승으로 어머니를 이야기한다. 한번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더 많은 것을, 더 정확하게 배운 셈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여자가 감각만 있으면, 집 안에 뭐 하나 버릴 게 없다고요. 못 입는 옷은 잘라놓으면 조각을 이어서 쿠션 커버를 만들어도 되고, 또 그 쿠션 커버가 지루해 쓰기 싫으면 가방 만들 때 써도 된다고 하셨지요." 손쉽게 새것을 사지 않고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만들거나 있는 것을 활용해 고쳐 쓰는 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살림법이다. 그건 가족을 위한, 손님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질보다 마음으로 꾸몄기에 그가 꾸민 집은 더욱 아름답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소파 대신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자니 청렴한 옛 선비의 집에라도 온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3. 딸민아가직접골라더사랑스러운 비비드 컬러의 소년과 소녀 모양 액자 뒤로 가족 나들이를 다닐 때마다 찍은 사진이 보인다. 책상 위나 벽에 사진들이 하나 하나 늘어날 때마다 큰 기쁨을 느낀다고. 얼마 전 어디선가 <꼬마자동차 붕붕>을 보고 온 민아를 위해서 구입한 자동차 모형도 보인다. 이런 소품들은 저렴한 가격에 장식효과도있고아이들이가지고노는 장난감도 될 수 있어 왠지 허전한 거실을 채우기에 만족도가 높은 아이템이다. 한쪽에 붙어있는 키티 캐릭터가 그려진 키재기 보드는 어린이가 있는 가정 특유의 발랄함을 발산한다. 인터뷰 중 마침 낮잠을 자다 깬 딸아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아이의 잠옷은 해피엔코(HappynCo)제품으로 3만 원에구입.

이지현 씨의 알뜰한 살림을 엿볼수 있는 공간이 또 있다. 바로 부엌이다. 주방은 식사 준비부터 가족간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보니 자연스레 다른 공간보다도 더 신경을 쓰게 된다고 한다. 모든 주부가 그렇게 느끼겠지만 수납을 하다보면 가장 잔손이 많이 가는 것이 부엌용품이리라. 지현 씨는 필요없는 물건은 그때 그때 버리고, 수납 가구를 잘 활용해서 그릇을 모양과 스타일별로 분류하면 보기에도 좋고 실용성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부부는 신혼 집을 꾸릴 때 샀던 가전제품들을 지금껏 사용하다가 십 년만에 새로 전자레인지와 전기밥솥을 구입하고, 냉장고도 같이 바꾸었다. 요즘 나오는 제품들은 다양한 기능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여러가지 음식을 요리하기가 편리하더라는 이야기는 요즘 세상에 왠지 낯설기도 하다. 그러나 전기포트가 있어도 주전자에서 물 끓는 소리가 좋다며 "제가 너무 구식인가요?" 하고 웃으며 묻는 지현 씨를 생각하면 아날로그적이고 욕심 없는 삶,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사는 그런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4. 딸 민아가 그린 '행복한 우리집'은 현관에 따사로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5.삼청동 로드샵에서 구입한 테디베어에 헌옷을 잘라 만든 옷을 입혔다. 민아도 스티치 넣기에 한 몫을 했다고. 삐뚤삐뚤한 바느질 선이 기성제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정겨움과 개성을 선사한다.
6. 소박한 뜨개질 바구니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차를 마시며 한코 두코 떠내려가 악세사리며 방석 커버 등을 만드는 것이 지현 씨의 취미.


도영 씨 부부는 전등갓 너머 은은한 불빛이 흐르는 식탁에서 따뜻한 밥과 찌개를 차려놓고 남편과 식사를 하며 진지하게 때로 소박하게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도영 씨는 자기 문제보다도 병원 문제를 먼저 생각하는 성격이에요. 너무 올곧고 정직하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라, 남모를 고민이 많아요. 식사를 하면서 병원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을 털어놓곤 해요." 지현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최도영 씨는 "정말 제가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한 점이 많아요. 제가 멋대로 굴어도 믿고 지켜봐주고, 대화 상대도 되어 주고, 제 마음에 위안을 주고... 제가 집에 자주 없어도 우리 딸 민아 잘 키워주고... 당신은 정말 내가 만난 최고의 행운이야. 내가 앞으로 정말 잘할거야." 부인의 이런 헌신적인 내조가 없었다면 아마 자신도 없었을거라며, 오랜만에 속 마음을 터내어 이야기하는 최도영 씨의 눈이 그렁그렁하다.


7. 최도영 씨 부부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 집의 전 주인은 80년대 초반, 당시로서는 최신식이었던 '유럽형 스타일'의 한샘 시스템 키친을 설치했다고 한다. 집을 구입할 때 리모델링할 수도 있었지만 어딘지 익숙한 그 느낌이 좋아 부분적인 보수 후 계속 사용하기로 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식탁 위에는 항상 신선한 과일을, 찬장에는 영양제를 놓아두려고 노력한다는 지현 씨의 귀띔.

여유로운 동네 부암동처럼 2층 단독주택인 최도영 씨의 집에도 마당, 다락, 지하실, 옥상 등 숨어있는 여분의 공간들이 많다. 그런 여분의 공간을 활용해 만든 것이 최도영 씨의 서재다. 계단을 따라 서재로 올라가는 길은 마치 구석진 다락방으로 향하는 것 같아 향수를 자극한다. 문을 열자마자 기자를 반기는 것은 오래된 종이의 냄새. 책꽃이에 미처 다 들어가지 못해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책들이 개인 서재라기 보다는 헌책방 같은 느낌이다. 벽면에 한가득 짜인 원목책장에는 의학서적을 비롯한 각종 분야의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어 도영 씨의 폭넓은 독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서재는 책을 보는 곳이고 오랜 시간 조용히 집중해야 하는 공간이잖아요. 그러니 조명의 역할이 중요할텐데... 애써 좋은 조명을 설치해주려고 해도 남편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라며 지현 씨가 흘깃 바라보자 도영 씨는 "그래서 제가 항상 아내에게 고맙죠."라고 눙치며 웃는다. 책상 옆으로는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강한 빛을 가리기 위해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최도영 씨는 가끔씩 밤이 되면 블라인드를 제치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깊은 사념에 젖어들 때가 많다고 한다. 서재 책상 위에도 가족사진이 놓여져 있는 모습을 보며 그들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오래된 주택에서 이들 부부는 주택이 지닌 본연의 느낌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존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집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화에 끼어든 민아가 "오늘은 저녁으로 피자 먹기로 했어요! 아빠랑 롤러스케이트도 탈거에요." 하고 자랑하자, 지현씨는 "오늘은 중간에 병원으로 도망 안갈꺼지?" 하며 활짝 웃는다. 이런게 평범한 행복이구나 싶다.


8. 도영 씨의 서재에는 책꽂이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책들이 가득하다. 책상 뒷편에 있는 스크랩보드에도 환자들에 대한 다양한 소견이 정리되어 있어 그의 꼼꼼한 성품을 짐작하게 한다.



‹하얀 거탑›은 2007년 1월 6일부터 같은 해 3월 11일까지 방영된 문화방송의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이다. 야마사키 도요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대학병원을 배경으로 권력에 대한 야망을 가진 천재의사 장준혁(김명민 분)의 끝없는 질주와 종말을 그리고 있다. (출처: wikipedia.org)

이어지는 연표는 드라마 ‹하얀 거탑›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과 드라마의 내용에 기반하여 작성한 가상의 연대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