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 × kim
More readers would only give me headaches

A short essay written for Monthly Design, published in October 2010. It is about making and editing Gazzazapzi and other small publications.

지난여름, 충무로나 을지로 쪽의 평양냉면집을 즐겨 찾았다. 평일 낮 점심 무렵이라면 주위에서 인쇄소와 출력소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대화가 들려오게 마련인데, 어느 날엔 신문사 조판공들의 이야기가 언뜻 귀에 들어왔다. 한때는 신참 기자들 정도는 상대도 해주지 않을 정도의 위세를 자랑하며 유명 면옥의 제면 기술자처럼 귀한 대접을 받던 조판공이었지만, 사진식자가 도입되며 활판인쇄는 빠르게 사라졌고,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조판공들의 운명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단숨에 사라진 조판공들과 조판의 기능적인 몫은 사진식자의 시대를 거쳐 이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주된 도구로 다루는 디자이너들이 생성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판과 인쇄 과정을 담당하는 업체들이 나눠 가졌다.

하이픈프레스의 로빈 킨로스(Robin Kinross)가 얼마 전 블로그에 게재한 ‘출판자로서 디자이너(Designer as publisher)’라는 글을 보면, 그는 위와 같이 진행되던 활판인쇄의 몰락과 탁상 출판 소프트웨어의 발달이 1990년대 ‘저자로서의 디자이너’ 담론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 같다. 기술적인 상황 변화로 책의 물리적인 제작 바로 직전까지의 시각적 형태 구성을 디자이너가 전면 통제하게 되었고, 여기에 형식을 만드는 것이 내용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고 전달한다는 의식이 더해져 ‘저자’는 아니더라도 ‘저자로서’ 디자이너 상이 출현한 것이다. 나아가 2000년대에 들어서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몇 년에 걸쳐 소규모 서적 출판에 적합한 인쇄 기술과 시스템을 활용하는 디자이너 스스로 저자이거나, 혹은 편집자를 거치지 않고 저자와 함께 콘텐츠를 직접 디자인하고 인쇄・발간하는 소규모 혹은 독립 인쇄물들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뿌리깊은나무> 폐간호인 1980년 8월호에는 ‘혼자 내는 잡지의 주인 노평구’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가 만드는 잡지는 이 나라에서 나오는 책이란 책, 잡지란 잡지를 거의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큰 책방에 가서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1980년까지 35년 동안 300호 넘게 혼자서 엮고, 인쇄・발행하고 유통하는 <성서연구>의 발행인 노평구 씨의 인터뷰였다.(그는 2003년 타계했다.) 폐간되는 잡지 마지막 호에 실리는 인터뷰이로 왜 이 사람이 선택되었는지 상징적인 의미가 사뭇 짐작되는 이 기사 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독자가 늘어나는 것도 골치야. 사람이 많아져 봐. 책에 대해서 갖가지 요구를 다 해온단 말야. 그렇게 되면 내 잡지의 본질적인 것이 흔들려.”

나와 내 동료들은 올해 들어 <인섹타 에렉투스>를 시작으로 <가짜잡지>로 묶어내지 않고 독립적으로 제 의미를 갖춘 책을 내기 시작했고, 해가 가기 전에 몇 권을 더 발행할 예정이다. <가짜잡지>에 실을 글과 작업을 의뢰할 때 어떤 제한을 두거나 잡지 연재의 성격을 띠기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단행본으로 나왔으면 하는 것들도 생긴다. 이 책들은 성격상 일반적인 출판사들의 기획・편집・발행 과정을 거친다면 시장에 나올 기회를 원천적으로 거부당하거나, 더 많은 독자를 대상으로 삼기 위해 필요하다는 여러 가지 요구를 받아 우리가 처음 원하던 형태로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클 테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책들을 내는 것에 대해 출판될 가치가 없는 책들을 억지로 세상에 내보이려고 하는 것이라거나, 혹은 출판사의 판단과 역량, 시장의 기능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쪽의 극단적인 경우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출판자로서 디자이너’에서 ‘편집자로서 디자이너’가 만드는 책만의 특별함 못지않게 편집자만의 진중한 중간자적 태도와 그 역할의 장점들을 가능하면 우리의 작업 과정에도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편집자의 역할을 생략하기보다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역할을 구분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물론 구두점 사용의 미세한 시각적 조정이나 여백, 서체, 자간과 행간 등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를 놓고 일일이 실랑이를 벌일 것 없이 일반적으로 출판되는 책들의 과잉 친절과 관습적 금기들을 배제할 수 있는 따위의 자유는 한껏 누리지만, 내용이 제대로 구성되고 전달되는지에 대해 온전한 책임감으로 책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친구들의 작업과 글에 적극적으로 조언하거나 피드백을 주면서 개입한다. 지면의 디자인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이 과정이 지난하고 소모적이어서 활력을 잃고 출간 시기를 한참 미뤄버린 채 고민에 빠져들기도 한다. 왜 이런 보상 적고 힘들기만 한 짓을 계속하나 지긋지긋해 할 때도 있지만, 나름의 가치 체계와 구조를 암암리에 내재한 긍정적인 긴장감이 느껴지는 작업을 만날 때면 동지를 만난 듯 기쁘고 즐겁다. 그야말로 ‘책은 친구를 만든다’. 실제로 서로 만나거나 만나지 않더라도 말이다.